Home > 아티스트 > 최종태
1970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로 부임
1972-1979 제21-24, 26-28회 국전 초대작품 출품
1975 조각개인전, 미국문화센터
1977 목판화전, 신세계 미술관
1980 서울시 문화상 수상
1981 조각개인전, 신세계미술관
1982 파스텔 그림전, 가나화랑
1985 「FIAC 85」파리 그랑팔레
1986 「SIAC」로마. 「FIAC 86」출품.
1987 현대미술 초대전,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전, 국립현대미술관
1989 서울시 문화상 수상
1990 한국 현대미술 오늘의 상황전, 예술의 전당
1991 「FIAC 91」출품
1992 대한민국 종교인 미술 큰잔치, 세종문화회관
1993 스위스 제네바, 아테네 미술관, 개인전
1994 개인전, 뉴욕 엔리코 나바라화랑
1995 몬테카를로 야외조각 비엔날레, 모나코 몬테카를로
1996 개인전 파리 가나보브르화랑
1997 스위스 바젤아트페어 출품
2009 가톨릭미술상 특별상 수상

서울대 정년퇴임, 서울대 명예교수 / 국민훈장 동백장 / 가톨릭 미술가협회 회장 / 김종영 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 장욱진 미술문화재단 이사
 
작가의 최종 목표는 자기만의 조형세계를 확립하는데 있다. 다시 말해서 작가의 창작활동이란 이제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독자적인 형태미를 모색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최종태의 조각은 형태미의 독창성과 함께 조각이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본보기를 제시하고 있다. 그의 조각은 최소한의 형태에 대한 관심으로 집약된다. 그렇다고 해서 동시대의 미학개념의 하나인 미니멀리즘을 원용했다고는 할 수 없다. 최소한의 형태는 그 자신이 추구해온 이상미에 합당한 조형적인 특징의 하나일 따름이다. 그처럼 집약된 또는 함축된 형태미는 단순히 외형의 단순화 또는 생략의 결과라고는 볼 수 없다. 그가 만들어 낸 형태는 원형으로부터의 완전한 이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인물상에서 머리 부분을 옆에서 누른 듯한, 평면에 가까운 형태는 극단적인 왜곡이고 변형인 것이다. 여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원형의 단순화 및 생략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는 형태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의 결과인 것이다. 그는 형태 해석과 관련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지극히 탐미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극히 간결해진 이미지가 놓쳐서는 안 될 절제된 아름다움과 격조를 중시한 것이다. 어쩌면 절제된 아름다움과 격조는 그의 조각이 도달할 수 있는 최후의 목표였는지도 모른다. 절제된 아름다움과 격조는 선비들의 덕목인 다양한 높은 식견 및 고상한 인격에서 비롯된다. 이는 일상적인 생활방식 및 태도와 관련이 있다. 스스로 고매한 삶을 지향함으로써 극도로 절제된 형태미 속에 인격미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이 지극히 간결한 형태에는 손의 기능 및 기교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의 조각이 지닌 설득력은 독특한 형태미에 깃들인 격조에 있다.

그의 조각에서 보여 지는 윤곽선은 섬세하기 이를 데 없다. 간결한 형태를 감싸는 지극히 단순한 윤곽선임에도 불구하고 실핏줄처럼 미세한 감정의 흐름이 감지된다. 그 미세한 감정의 흐름은 애련한 것이기도 하다. 더구나 사선을 이룰 경우에는 애조의 그림자가 더욱 짙다. 무언가 형언키 어려운 감정을 자아내는 것이다. 조각 작품에서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예외적이다. 이는 눈에 보이는 조형적인 아름다움 이면에 작가 자신의 표현감정이 반영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감정을 움직이지 못하는 조각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간에 무기질적인 형태미만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감상자에 대한 설득력이 약하게 마련이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아무튼 그는 더 이상 함축할 수 없을 만큼 극단적으로 간결한 형태미 속에 독자적인 공간을 성립시키고 있다.
<글쓴이 신항섭 대한민국 예술원에서 펴낸 한국예술 총집 미술편 4중에서>
 
결론적으로 최종태는 보수적이며 고전주의적인 성향을 조각과 그림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발휘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노력은 낭비 없이 작품에 경주되어 그때그때 틀림없이 결실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다작이 아니지만 낭비가 없는 견실한 그의 작업 태도는 그의 양식적인 특성과 함께 특이한 작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가라는 것을 언제나 주위에 과시해 주고 있다. 앞으로의 발전이 어떻게 방향지어질 것인가는 알 수 없지만, 현재까지의 작업만으로도 그의 탁월한 조각가로서의 천재를 충분히 발휘하였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 연결되는 전통적인 요소와 함께 입체주의에서 시작된 그의 현대적 조형은 기하학 추상과 1960, 70년대의 감축주의적 형태의 단순화를 통하여 옛것과 현재를 결합시켰다. 그는 한국 화단에서만이 아니라 세계미술사적인 수준에서도 독보적인 인물조각가라고 불리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글쓴이 정병관 최종태화집 중에서 1988년 열화당 출판>
 
‘모과나무 밑을 지날 때마다 나는 기도한다. 저기 매달려 있는 모과들처럼 나를 떨궈 내지 마시고 노랗게 익거든, 그런 날에 나를 당신의 품으로 거두어 주소서.’조각가는 희수의 나이를 접고 오늘도 조각, 파스텔화, 유리화, 소묘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는 종교를 예술에 접목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습니다. 언젠가는 저절로 하나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그러한 염원은 국전에서 추천작가상을 받은 <회향>과 모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일관되게 추구해 온 그 많은 <형태>속에서 쉼 쉬고 있습니다. 그의 형태들은 아직도 교회가 예술을 수용하지 못하고 교훈적, 사목적 목적에 의해서 만들어 낸 성물들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합니다. 한복을 갈아입은 성모 마리아, 반가사유상을 연상시키는 예수의 얼굴들. 그러나 마흔 한 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절두산 성지에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을 세웁니다. 바오로 수녀원, 명동 성당, 연희동 성당 등 많은 성당과 수녀원에 기념비적인 성상들을 세웁니다. 참다운 예술만이 하느님의 무한한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다는 조각가의 영성과 신념 때문입니다.

조각가는 또한 한국미술가협회 초대 회장과 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직을 수락한 후 작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거리들로 바쁜 시간을 헤쳐 나가면서 묵묵히 성미술의 토착화에도 기여를 합니다. 조각가는 서울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고, 연고지인 대전시립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으며 지난해에는 나라가 수여하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심사위원 전원은 조각가 최종태의 특별상에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글쓴이 윤명로 - 2009년 가톨릭미술상 특별상 심사소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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