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예술의 만남 - 조재구 선생이 가는 길
조각가 조재구 선생은 가톨릭 종교를 만나서 그의 작업에 날개가 돋혔다 할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어느 골짜기에서 방황하고 있었을는지도 모릅니다. 조재구 선생의
경우 참으로 운명적이라 할 만치 적절한 시기에 예술과 종교가 연결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조재구
예술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조재구 선생은 가톨릭 종교를 만나서 자기 길을 찾았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행복하게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조재구 선생의 조각은 본래 입체적인 것 특히 면성面性과 선성線性이 두드러지는 예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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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특성이 성모상이나 성가족상이나 십자가상 등이 되면서 하나도 버려진 것 없이 성상 예술로 수용되고
있습니다. 자기의 예술적 특성 그대로를 살리면서 자연스럽게 성상 조각이 된 것인데 그런 면에서 드물게 성공하고
있는 조각가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고졸古拙한 형태미와 탈속한 기품이 성상으로서 잘 어울립니다. 겉으로 기교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마도 타고난
기질에서 연유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꾸밈새 없이 천진한 형태들이 보는 이들을 안심시킵니다.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 하는 의문을 조재구 선생은 사전에 다 제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주제를 갖고 있다 해서
다 종교 미술인 것은 아닙니다. 중세미술이 갖는 특성이 있습니다. 의미가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르네상스 이후의 서구 종교 미술은 아름다움으로 종교를 설명하려 한 경향이 큽니다. 조재구 선생의 입장은
전자前者에 관계된다고 보여집니다. 신앙 안에서 형상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현대 미술의 주된 흐름하고는
역행하는 노선입니다. 그래서 서 있기가 매우 힘든 자리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가톨릭교회 미술의
역사에서 보면 누군가는 담당해야 할 짐이기도 한 것입니다.
조재구 선생은 진실로 자기만의 믿음을 정직하게 형태화하고 있습니다. 속됨이 없고 순박하고 그가 사는 그대로
입니다. 그의 형태는 성당이라는 공간 속에서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그것은 삶에서 배어 나오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꾸밀 수는 없습니다. 요즘세상에서는 사는 것 따로 아름다움을 이룩하는 것 따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날 위대한 성 화가들은 그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조재구 선생이 성 미술가란 뜻은 아닙니다.
앞서 말했다싶이 그가 가는 길에 종교성이란 것을 만나서 조재구 예술이 꽃을 피웠다 그런 말입니다. 그것은
그에게 구도의 삶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형미말고 하나 더 하여 초월적인 어떤 기운氣韻이 있다는 것입니다.
조재구 선생은 그런 길을 즐겁게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기에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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