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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단체박람회


 

올 4월 초 주일 미사 후 필자가 사목하는 역촌동 본당에서 단체박람회를 개최하였다. 성당 마당은 각 단체의 홍보 부스와 눈에 띄는 플래카드로 메워졌고 신자들로 북적거렸다. 청년성가대와 연령회를 비롯하여 색소폰·볼링·낚시 동호회 등 31개나 되는 단체들은 회원 모집에 열을 올렸다. 11개에 이르는 동호회는 저마다 특색을 살려 홍보에 재미를 더했다. 이날 박람회에서 단체에 새로 가입한 신자 수는 300여 명이나 되었다. 중복된 가입을 고려해도 예상치 못한 풍성한 결실이었다. 특히 봉사단체인 연령회와 카리타스회 가입자가 많았다. 등산 동호회는 새 단원 38명을 맞이하였고, 단원이 부족해 고심했던 단체들도 신바람이 났다. 

 

 

1. 발상의 전환을 요하는 사목

 

일반 사회에서는 오랜 전부터 다양한 형태의 박람회가 있어 왔다. 건축박람회, 창업박람회, 꽃박람회, 웨딩박람회, 세계박람회 등 종류와 형식이 수없이 많다. 박람회는 한 나라 또는 지역의 문화나 산업 등을 소개하기 위하여 그에 관련된 각종 사물이나 상품을 진열해 놓은 것을 말한다. 대개 일정한 기간을 정해 놓고 일정한 장소에서 산업, 경제, 학술, 종교, 예술, 교육 등의 국력 현황과 다른 나라의 발전상 등을 비교한다.

필자는 방송 시스템을 전시하는 박람회를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다. 각종 방송장비를 생산·유통하는 기업체가 할당된 부스에서 자사품 내지 유통 제품을 소개하는데, 방송에 관련된 모든 장비를 한눈에 볼 수 있어 각 부스를 지나가며 구경하고 또는 직접 장비를 조작하여 체험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수많은 부스별로 고객 유치를 위한 경쟁과 아이디어가 놀랍고 대단하다. 이런 박람회는 방송 장비 관련 기업체의 홍보 마케팅을 돕고 판매 실적을 올리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본당에는 신심과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모든 단체가 활발하지는 않다. 단체장의 리더십이나 단체 성격에 따라 분위기가 좌우되지만, 단체 활성화의 기본 조건 중 하나는 새로운 회원 확보다. 어느 단체라도 새로운 회원이 유입되지 않으면 그 단체는 정체되거나 쇠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활성화가 안 된 기존 단체들이 회원이나 단원을 확보하려고 머리를 맞대고 자구책을 강구하거나 아니면 사목자에게 부탁하여 주일미사 공지시간에 단체 가입을 종용하도록 부탁하기도 한다. 그래도 효과는 별로 없다. 그렇다고 포기해야 하는가? 방법은 전혀 없는가?

본당사목에도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일반 사회의 박람회 형식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박람회 근본 취지는 기업 홍보와 고객 유치다. 일반 사회 박람회는 거의 상업적이며 수익 지향이 목적이지만 교회는 단지 박람회 형식과 방식을 통한 단체 회원 확보가 목적이다. 사목 실천에서 발상 전환을 수용하려면 교회가 사회와 소통하며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회가 지닌 장점을 배우고 모방해서 활용할 수 있다. 

 

 

2. 왜, 어떻게, 그 효과는 무엇일까?

 

본당 단체박람회는 각 단체의 활성화, 1인 1단체 권장, 그리고 단체 간의 이해 도모를 목적으로 한다. 신자 중에는 주일미사만 봉헌하고 그 외의 활동은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본당에 어떤 단체가 있는지, 그 단체의 성격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단체 활동은 신앙생활에 활력을 주고, 신앙을 교회 안팎으로 표현하며, 친교의 공동체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신자 개개인이 단체 활동을 많이 하면 할수록 본당 공동체는 그만큼 활성화된다.

단체박람회를 개최하기 전에 담당 분과(예: 문화체육분과)는 사전 모임에서 기획과 전략,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논의한다. 담당 분과는 단체박람회 개회 이전 최소 두 주 전에 본당 단체장들을 소집하여 구체화된 내용을 브리핑하고 각 단체별 준비물을 숙지시킨다. 이러한 사전 모임을 통해 각 단체와 단체박람회의 취지와 방법을 공유하여 어떤 형태의 혼란도 발생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당일 주보에 각 단체를 간단히 소개하는 간지를 넣어 미사 공지시간에 주지시킨다.

드디어 단체박람회가 계획에 따라 개최되었다. 본당 마당 혹은 성당 안에 각 단체별 홍보 부스를 마련해 주었다. 또한 미사 후에 신자들이 나오면서 부스를 따라 성당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동선도 고려하였다. 단체별로 신바람 나게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야말로 본당 마당 전체가 잔치 분위기였다. 통기타생활성가동호회는 연주를 선보였고, 축구동호회 회원들은 멋진 유니폼을 입고 축구공을 찼으며, 성령기도회는 여러 사람이 유인물을 나누어 주면서 가입 신청서를 쓰도록 인도했다. 특히 대부분의 신자들은 단체에 가입하려 해도 먼저 찾아가기가 쑥스러워 망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적극적인 홍보로 인해 이런 부류의 신자를 많이 끌어들일 수 있었다.

단체박람회는 여러 가지 효과를 본다. 우선, 1인 1단체 가입으로 냉담 교우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 단체에서 활동하게 되면 신앙생활을 정기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새 영세자나 타지에서 전입한 교우들이 소외되지 않고 기존 교우와 자연스레 유대 관계를 맺어 낯선 본당 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게 해 준다. 새 영세자 중에는 레지오나 봉사단체에 가입하는 데 부담감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 이럴 때 취미나 취향에 맞는 동호회를 소개한다면 보다 쉽게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신심·활동 단체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면 본당 공동체도 더욱 활기가 넘치게 된다. 넷째, 주말이면 미사 참례보다 야외로 빠져나가는 ‘레저족’을 불러들이게 된다. 필자의 본당 산악회는 정기적으로 주일 9시 미사를 함께 봉헌하고 북한산을 등반한다. 마지막으로, 신자뿐만 아니라 외짝교우 배우자나 비신자 지역주민도 본당 동호회와 함께할 수 있다. 

 

 

3. 새로운 시대, 새 복음화

 

서울대교구를 비롯하여 여러 교구에서 올해 사목표어를 ‘새로운 시대, 새 복음화’로 정하여 매진하고 있다. 교회가 새 시대의 징표를 읽고 그에 따른 새 복음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모든 삶의 방식이 문화로 되어 있고, 문화를 통해 정치, 경제, 사회가 실천되고 표현된다. 새 시대란 ‘문화의 시대’이며, 새 복음화란 곧 ‘문화의 복음화’다.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복음화되고, 복음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문화의 복음화이며, ‘새로운 열정, 새로운 방법, 새로운 표현’으로 실천되는 것이다.

본당 단체박람회는 문화의 복음화를 위한 문화 사목이며 문화 선교다. 쇠퇴하는 본당 단체를 다시 일으키고, 활발한 기존 단체는 더욱 활성화시키며, 새로운 단체를 형성하여 뿌리를 내리게 하는 새로운 열정과 투신이 이루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목자가 직접 나서서 단체 가입을 권유하거나 각 단체가 개별적으로 노력하는 기존의 접근방법이 아닌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새로운 방법과 표현이란 다양한 문화적 접근이다. 박람회라는 사회적 문화 현상을 교회가 복음정신에 맞게 활용하여 단체 활성화를 꾀하는 것이다. 일반 사회 문화의 교회적 활용은 토착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교회 문화로 정착되기도 한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더 이상 일반 사회만의 디지털 문화가 아니고, 이제는 교회 안에서도 일상화된 교회 문화가 되었듯이, 새로운 교회 문화의 창조와 확산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실천하는 데 필연적이다.

어느 본당 신자가 다음과 같이 술회한 적이 있다. “단체박람회를 통해 동호회에 가입하여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어 좋았습니다. 저희 남편도 신자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단체박람회에서 동호회에 가입하더니 스스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열심히 주일 새벽 미사에 나가고, 또 제가 아는 분도 동호회를 통해서 세례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본당에 단체박람회를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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