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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과 정신의 양식인 독서


1. 할리우드식의 책들

나는 최소한 한 달에 두 번 이상 서점에 들른다. 잠깐 머문다 하더라도 2시간 정도는 금세 지나간다.
많은 여성들이 쇼핑하면서 다리 아픈 줄 모른다는데 나도 서점에만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 코너 저 코너 신바람 나게 다닌다.

언제부터인가 서점에는 자기 계발과 처세술 혹은 경제 관련 서적들이 압도적으로 붐을 이루고 있다.
이런 책들은 눈에 잘 띄는 여러 장소에 진열되어 있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문, 사회 과학 계통의 서적들은 후미진 곳에 위치해 있다. 냉혹한 시장 논리에 따라 사람도 사회적으로 차별화되는데 책은 오죽하겠는가?

나 역시 이 시대의 트렌드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예전 같으면 읽을 가치가 별로 없다고 간주하고 눈길도 주지 않았던 자기 계발, 경제 관련 책들을 이제는 가끔씩 사서 읽어 보기도 한다.  때로는 그럴 듯한 제목만 보고 샀다가 건질 내용이 없어 낭패를 보기도 하지만, 이따금 좋은 내용을 만나면 귀한 보물을 얻은 듯 뿌듯한 만족을 느낄 때도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깊게 사색할 수 있는 책보다는 쉽고, 재미있으며, 충분히 감동적인, 일종의 ‘할리우드식’의 책들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인문, 사회 과학 계통의 책들이나 이와 관련된 출판사들은 고사 상태에 놓여 있다.

2. 출판사의 위기

요즘 출판사들이 겪는 어려움은 인문학의 위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얼마 전에 고려대학 교수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선언한 데 이어 전국 인문대 교수들과 인문학 관련 출판사들이 인문학에 대한 실질적 지원을 촉구하고 나섰다.  “오늘날 직면한 인문학의 위기가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진정성을 황폐화시킬 수 있음을 자각한다”는 그들의 외침에는 인문학이 인간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학문인지 일깨워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하는 학생 수가 줄어들어 인문계 학과의 통폐합 및 축소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인문학과 인문 출판의 위기는 변화된 현실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인문학 주체들의 책임이 크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자연 과학, 사회 과학, 인문 과학으로 나눠진 근대적인 분리 모델이 그 위기의 핵심이라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분리 모델 속에 수많은 정보가 바다를 이뤄 흘러갈 뿐 지식으로 재가공되지 못한 채 폐기되고 있다. 게다가 구체적인 현실과 실천보다 추상적이고 이론적이기 때문에 점차 복잡해져 가는 사회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식의 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되고 있다.

출판사들의 위기는 교회 출판사에도 해당된다. 출판되자마자 곧바로 재고로 쌓이는 교회 서적들이 허다하다.
겨우 몇 권의 책만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출판사의 명맥을 이어 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한다면, 파편화된 정보, 추상적 지식만을 나열하기보다는 신학, 역사, 철학, 영성 등의 여러 경계를 넘나들며 통합적인 안목과 구체적인 삶의 자리를 통해 신앙의 길을 제시해 주는 책들이 제격일 것이다. 이에 발맞춰 출판사들도 소비자들의 기호를 날카로운 식별력으로 판단하고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는 시도도 지속시켜야 할 것이다.

3. 인쇄 매체의 운명은?

출판사들의 다각적인 자구책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인구는 참으로 빈약하다.
미국의 전국 여론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30개 국 중에 한국인이 가장 적게 책을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활자 매체 할애 시간이 주당 3.1시간이라니, 책 읽기로 보내는 시간에 인색하기 짝이 없다. 지하철을 타면 젊은 사람들일수록 휴대폰으로 전화, 문자 메시지, 게임을 하기도 하고, 위성이나 지상파 DMB로 TV를 보는 추세라 책을 읽고 있는 풍경은 보기 드물다.  또한 젊은이들은 뉴스나 정보를 얻기 위해 활자 신문보다 인터넷의 포탈사이트(구글, 야후, 네이버, 다음 등등)에 더 많이 의존한다. 이 시대에 영상 매체가 지배적인 문화라면 인쇄 매체는 이제 잔여 문화로 남게 된 셈이다.

과연 인쇄 매체는 인간 역사에서 사라질 운명일까? 한마디로 결코 그렇지 않다. 생각하고, 비판하고, 상상하는 힘을 키워 주는 책의 가치는 영상 시대에도 여전히 필요하다.  이 시대의 논객 중의 한 사람인 진중권은 한국인들이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담론 내지 토론을 내지 못하는 이유를 근대에 도입된 인쇄 문화의 짧은 역사에 기인하고 있음을 주장한 바 있다. 서구에서 구텐베르그 혁명 이후 오랜 세월 대중은 인쇄 문화를 통해 사고력과 합리적 담론을 형성해 왔다. 반면에 한국은 짧은 인쇄 문화의 형성에다 감정적으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인터넷 문화의 급속한 확산으로 합리적인 담론은 더욱 힘들게 되었다. 예를 들면, 사형제를 폐지하자고 하면, “XX야, 니 딸이 그런 일을 당해도 그런 말 할래” 한단다. 그 뒤에 봉건적인 처형 방법이 뒤따르는데, 능지처참을 해야 하느니, 육시를 해야 한다는 등등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인터넷 게시판이 뒤범벅된다는 것이다.

4.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독서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면을 보충, 지식과 정보를 제공 받고, 교양을 높이고, 여러 가지 지혜와 통찰을 얻게 된다. 또한 마르지 않는 상상력과 창의성이 발달되고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친구이다. 향상심으로 자신의 인생을 생각할 뿐만 아니라 폭넓은 생각으로 남의 삶도 소중함을 알게 되어 자연히 이웃과 더불어 살게 된다.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 등의 동남아에서 중동의 이집트나 남미의 브라질까지 한류 열풍이 기세를 떨치고 있지만 독서를 통해 상상력을 기르지 않고서는 앞으로 다른 나라와 문화 콘텐츠 경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최고 경영자(CEO) 5명 중 1명은 일주일에 한 권 정도의 독서를 한다. 독서의 목적이 시대 트렌드 포착이나 경영 아이디어 발굴보다 삶의 지혜를 얻겠다는 목적이 더 강하다고 한다. 책이 마음과 영혼의 양식임을 알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체는 북크로싱(Book Crossing) 제도를 도입하여 한 번 읽고 책장에 가둬 둔 책들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일정한 약속 장소에 두면 다른 사람이 읽고 또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일종의 책 돌려 보기 운동이다. 또한 어떤 CEO는 독후감 릴레이를 펼쳐 전 사원이 자발적으로 동참하여 책을 통해 서로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의 장이 되기도 한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문화 운동을 펼친다면 교회 출판사와 신자들 간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 될 것이다. 어느 리더보다 사목자의 영향력은 월등히 크기 때문에 그가 추천하는 책이나 내용은 신자들에게 커다란 효과를 줄 것이며, 독서 문화 정착에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결실을 맺는 가을이 점점 깊어 가고 있다. 가을의 풍요로움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손에서 책을 떼지 않는 삶이 될 때 인생 역시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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